대부분의 사람이 가장 많이 부르는 단어이지 않을까.

나는 엄마와 성향이 달라 엄마도 나도 많이 힘들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도. 엄마 몸이 아프고 나도 아파올 즈음 더는 안 되겠던언니의 도움으로 많은 속내를 털고 나서야 아주 조금씩 조금씩 서로에게 편해지고 있는 중이지 않을까.

친정이라는 곳이 막상 편하지만은 않았었다. 하지만 그 후로 가도 똑같이 바쁘고 일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지만 마음이 편해지니친정이 참으로 편한 곳이 되었다.

내가 우리 엄마가 편해지듯이 내 딸이 내 아들이 나를 편해하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다.

‘엄마’는 여자이기 전에 ‘엄마’라는 말.

여자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엄마이기 때문에 쌀가마니보다 더 무게가 나가는 내 아이들은 팔이 빠질 것 같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도 안고 업고 몇시간을, 하루종일을 생활하게 돠고, 지쳐서 움직이도 못할 몸으로도 아이들을 챙기게 되고, 특히나 코로나 시기에도 이웃 엄마들의 전우애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고, 그럼 엄마파워, 모성은 엄마들만이 알 수 있다.

’엄마‘는 내가 엄마가 되고, 내 아리따운 친구들이 엄마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더 애잔하고 존경하고 몽글몽글해지는 단어가되었다. 세상의 소중한 엄마들 오늘도 애쓰셨어요. 쉬는 밤이 되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