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을 대하는 자세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들과 만날 때면 우스갯소리로 '저는 별주부 전에 나오는 토끼에요. 간을 배 밖에 두고 다니거든요' 라고 말한다. 큰 아이 때문에 애간장이 다 녹는 경험을 한 터라 이보다 나를 더 잘 소개하는 멘트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면 상대방은 격한 공감을 표한다. 아이의 호르몬 변화는 실로 무서운 것이다.

성숙하다, 애늙은이 같다, 어른스럽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던 큰 딸은 5학년 겨울 방학부터 점점 낯선 모습을 보였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나랑 싸우기로 작정이라도 한듯 화가 나 있었고 스마트폰에 집착했다. 딸 아이 입에서 '가족보다 친구가 더 좋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상당히 서운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무엇보다도 아이돌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가족 생일은 몰라도 '오빠들' 생일은 죄다 꾀고 있어 멤버들이 태어난 날에는 홍대로 카페 투어를 다녀올 정도였다. 몇몇 카페에서 생일인 아이돌의 컵홀더와 포토카드를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자, 아이는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고 결국에는 온라인 출석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밤새 친구와 카톡을 하고 낮에는 유튜브의 세계에 푹 빠져 허우적거렸다. 학원도 가지 않아 선생님들의 우려 섞인 전화가 이어졌다. 나는 이 모든 게 스마트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급기야 '스마트폰 중독 해결'을 목적으로 아이와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상담을 받아보겠다고 했다.

"손가락이 아파서 병원을 찾지만 알고 보면 손목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저런 검사를 마친 상담 선생님의 결론에 나는 상당히 겸연쩍어졌다. 그동안 아이가 친구 관계로 힘들진 않은지, 학교 생활에 어려움은 없는지 묻지 못한 채 스마트폰에 집착한 모습에만 날카롭게 반응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자괴감이 몰려왔다. 자기주도적으로 키우지 못했으면서 고학년이 됨과 동시에 알아서 공부하길 원했고,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떠넘길 때도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상담사의 말이라고 다 옳은 건 아니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로서의 역할을 되짚어본 기회가 된 것은 분명했다. 그때 이후로 나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춘기 아이의 말이나 행동에 무던해지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아이가 사납게 말해도, 눈빛이 매서워도 크게 숨 한번 들이마시고 힘든 일이 있는지 물으려 노력한다. 되도록 성적 스트레스 없는 대화를 이어가려 하고 아이를 제대로 독립시키는 일이 곧 부모가 해야 할 일임을 잊지 않으려 되뇌인다.

이제는 웃으며 스스로를 '토끼'에 비유할 수 있지만 솔직히 다시 태어나면 엄마는 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걱정, 불안, 두려움이 어떤 감정보다 앞서는 터라, 무던하게 아이를 대하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 글쓰기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토닥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몸부림도 하루하루 무던히 살아내고 싶은 나의 바람이 일으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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