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렌시아.

애정 또는 안식처를 뜻하는 스페인어. 어원은 투우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가 잠시 쉬면서 숨고르기 하는 영역이라고 한다. 소만 아니라 사람도 숨고르기 해야 하는 때가 있다. 특히 번아웃되어버린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머물며 재도약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케렌시아는 공간 그 이상의 것이다. 나에게 케렌시아는 있는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만의 공간이라고 인지하는 곳은 있다. 위치가 매일 조금 달라지지만 말이다. 바로 집앞에 있는 도서관 3층 제1열람실. 입구에서 바코드 찍고 잔여좌석 중에서 자리를 선택한다. 애정하는 자리가 있어 마침 비어있으면 선택하고, 만일 누가 선점하면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자리를 찜한다. 요즘은 다른 일때문에 잘 안 가지만, 올봄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점심식사 후에 집을 나섰다. 집중이 안되는 날엔 3시간 만에 나와버리지만, 대개 6시간 이상 자리를 지킨다. 마침 거리두기하던 때라 양옆에 사람이 없어 쾌적했다. 소설을 쓰거나, 월든을 필사하거나, 글쓰기에 진심이었다. 열람실의 분위기는 몰입에 최적화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나다운 시간을 만끽했다. 가을이 되면 다시 찾아가리라. 나만의 케렌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