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렌시아라는 주제를 오늘 글쓰기의 소재라는 것을 알고 나는 내가 처음 어디서 이 단어를 처음 접해보았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몇달전 읽은 류시화의 산문집에서 본 것같다. 그 산문집을 읽으며 특히 케렌시아의 의미를 처음 알게되면서 많은 사유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 되새겨졌다. 나의 케렌시아, 안식처는 어디인가. 글쓴이가 말하길 케렌시아는 물리적인 장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사유의 시간이 될 수도있다고 하였다. 투우하는 소들이 쉴 만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그 곳, 그러한 안식처. 나에겐 케렌시아가 어떠한 곳인지 물어본다면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정신을 깨우며, 좋은 향과 좋은 공기을 음미하는 시간일 것이다. 나의 케렌시아에는 나의 가족들이 있고, 나의 반려동물 망고도 함께 숨쉬고 있다. 이 시간을 나는 케렌시아라고 정의 내리고싶다. 나이가 들어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물질적, 환경적으로 독립을 이루고 가정을 이루다보니 케렌시아가 더욱이 절실히 매일 그리워지는 것을 느낀다. 하루를 살아가며 내 인생을 쌓아가는 동안 내가 숨쉬고 쉴 수있는 안전한 그 순간,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쉼과 에너지를 얻고 마치 투우장의 소가 다시 싸움을 하러나가듯 세상에 또 한걸음 나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