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로 ‘안식처, 피난처’라는 뜻이다. 투우(鬪牛) 경기에서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곳을 말하는데 경기장 안에 일정하게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투우 경기 중에 소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곳이라 한다.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 케렌시아. 쓰담쓰담 글쓰기친구에게 세 번째 주제, ‘케렌시아’를 받고 고민 없이 한 곳을 떠올렸다.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 퇴강마을 – 낙동강 칠백 리가 시작되는 곳이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가에 언니들과 흙집을 지었다. 일명 가족타운이다. 가족끼리 알콩달콩 모여 살고 싶어 마련한 집터인데 두 차례 방송을 타며 이젠 꽤 알려진 곳이 되어 버렸다. 황토로 지어진 멋진 집 세 채는 첫째, 둘째, 넷째언니네 집이고, 맨안쪽 작은 오두막이 나의 세컨하우스(Second House)이자 나만의 케렌시아다. 텃밭에는 상추, 오이, 부추, 고추 등 온갖 채소뿐 아니라 참외며 수박이며 방울토마토까지 없는 게 없고, 아침마다 우렁찬 모닝콜을 빠뜨리지 않는 닭들이 예쁜 달걀을 내어놓는 그곳을, 우리는 ‘퇴강마트’라 부른다. 아침햇살을 즐기며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다. “뭐하냐?” “쌈밥 해 먹을까?” 수시로 안부를 물어오는 세 언니야들이 있어 무료할 틈이 없다. 고추전을 부쳐내고 밑반찬을 만드는 언니들의 손놀림을 보는 것은 그 어떤 연극보다 흥미롭고 유쾌하다. 그곳에선 하루의 하늘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동트는 새벽의 하늘빛, 햇살 가득한 아침 하늘빛, 가끔은 패러글라이딩하는 사람들을 품고 있는 한낮의 하늘빛, 겨울이면 아궁이에 장작불이 들어가는 늦은 오후시간의 그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개와 늑대의 초저녁 해질무렵의 하늘빛, 그리고…몽골의 하늘보다 더 많은 별빛을 쏟아내는 깊은 밤 하늘빛까지. 그곳엔 없다. 큰 도로의 자동차소음도, 쾌쾌한 매연냄새도 없다. 빌딩숲의 눈부심도, 사람들의 악다구니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엔 있다. 정겨운 개구리소리도, 모닥불에 장작 다닥다닥거리는 소리도, 모깃불 냄새와 언니네 부엌에서 풍겨나오는 시래깃국 냄새도 그곳엔 있다. 무엇보다 그곳엔 둘러앉은 함께 밤하늘 봐주는 언니들의 편안한 숨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