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눈사람'을 아시나요?

이제와 말하기 쑥쓰럽지만 한때 나는 드라마 작가를 꿈꿨다. 특히 '마지막 승부' '의가형제' '질투'에 푹 빠졌었는데 당시 내 소원은 배우들에게 직접 쓴 시나리오를 주며 출연 요청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모전 당선을 목표로 단막극 쓰기에 도전했다가,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일찌감치 열렬한 시청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눈사람'이라는 글감을 보자마자 드라마 '눈사람'이 떠올랐다.

이 드라마는 공효진, 오연수, 김래원, 조재현 등 연기파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으나 상당히 욕을 많이 먹었다. 형부를 짝사랑하는 처제의 이야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낯선 소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형부가 처제의 마음을 받아주긴 했지만 석연찮은 엔딩으로 시청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김래원은 처제 역을 맡은 공효진의 해바라기였는데 공효진이 끝까지 마음을 내주지 않아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형부에 대한 처제의 사랑은 한낱 사라지고 마는 눈사람처럼 녹아서 없어져야 마땅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엄청나게 멋진 형부가 나타난다면, 하필이면(!) 내 이상형에 가까운데다, 극 중 오연수처럼 우리 언니도 죽게 된다면, 나는 과연 형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그때는 드라마가 끝나고도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친구들과 만나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그러나 언니도 결혼하고, 나도 결혼한 지금.... 이제와 그 대답을 찾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왜? 십오 년 가까이 형부를 지켜본 결과 형부는 남자가 아닌 가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