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그래. 봄여름 동안 지상의 것들은 자신의 생명력으로 불타오르지. 하지만 가을의 손길이 닿는 순간, 그 생명력들은 스러지기 시작하고 이윽고 겨울. 그건 죽음이야. 그래서 가을은 신비로워. 죽음 직전의 생명들. 다가오는 죽음.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생명력이 사그라들고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 모든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는 짧은 시기가 있으니 그게 가을 어느 중간쯤에 있는 마력의 시간이야.

마력의 시간이라는 것은 모든 장소에 각각 다르게 일어나. 분명 가을 어느 시기인 것은 확실해. 그런데 우연히 그 마력의 시간에 들어가면 그에게는 온갖 희귀한 일이 일어나지. 그 짧은 가을 동안, 낙엽이 대지를 덮기 시작하고 마침내 첫눈이 오게 될 때까지, 그 사람은 평생에 기억될 단 한번의 가을을 가지게 되지. 때론 모를 수도 있어. 그저 그 가을에 일어났던 일만 기억하다가 몇 년 후에나, 혹은 늙어버렸을 때 겨우 알아치리게 되지. 하지만 자신의 마력의 시간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낙엽이 대지를 덮을 때부터 첫 눈이 오기까지 놀라운 일을 이룩할 수 있지.

내가 중학교 때 읽었던 첫 판타지 소설이자 처음으로 12권을 다 사서 들여다 놨던 '드래곤 라자'의 일부이다. 마법의 가을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었다. 내 인생의 가을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가을의 끝자락에서 신랑을 만났고, 사랑스러운 딸을 낳아서 진정한 엄마의 길로 들어선 것도 가을 무렵이었다.

40이 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진정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평생에 기억될 단 한 번의 가을을 가지기는커녕 매번 살아내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요즘 몸의 컨디션에 따라 마음도 요동치는 한 달이다. 나의 마음과 몸을 내가 잘 알아내는 것. 그것으로 이 가을이 지나고 나면 좀 더 성숙한 내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