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필을 쓰는 날이 손꼽을 만큼 적지만, 예전에는 책상 위에 늘 연필 한 자루가 있었다. 과외를 하던 때에는 연필에 모자처럼 뚜껑을 씌워 가방에 넣고 다니곤 했다. 학생들 책에 볼펜을 그을 수는 없기에 차선책으로 썼는데, 40대 초반에 수술을 하며 급하게 과외를 접었다.수술 후에는 연필을 들고 다닐 일은 없었다. 대신 볼펜을 쓰게 되었고, 이마저도 해가 지날수록 컴퓨터에 저장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2016년 3월에 갤럭시노트5를 손에 넣자마자, 요물에 홀린 듯이, 갤노트와 사랑에 빠졌다. 뭐든 쓰고, 닥치는 대로 저장했다. 카메라 화질이 좋아지니 사진도 많이 찍었다. 손끝으로 힘이 몰렸다. 무언가를 손가락 사이에 걸치고 적는다는 행위가 어색해졌다. 오랜만에 연필을 쥐고 글을 쓰면 10분만 지나도 손이 아파왔다. 10대에는 종일 쥐고 있어도 괜찮았는데. 나이 탓만은 아니었다. 시대의 흐름이었다. 20세기에 태어나, 윈도우의 탄생과 S전자 핸드폰의 진화를 지켜보았다. (애석하게도, 국내업체 L전자 물건을 한번도 써보지 못했다.) 그리고 2020년 팬더믹이 시작되자, 갤노트와 나는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집에서 한발짝도 안 움직이고 그것을 통해 친구와 지인과 세상과 소통했다. 그리고 작년에 S21로 갈아타며 또 다른 세계를 만났다. 바로 인스타그램이었다. 글과 사진이 함께 하는 메타버스 세계. 블랙홀처럼 모든 것들을 빨아들었다. 시간과 에너지와 인맥과 루틴까지. 쓰담쓰담을 만난 곳도 인스타그램 세상이었다. 단 1년 사이에 모든 것들이 변했다. 연필의 종말.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사각사각 소리내며 쓰는 즐거움을 잊어버렸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다. 연필의 나무향같은 글벗들. 오늘, 여기에 모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