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첫 눈보다 힘이 세다?

"엄마는 동심 파괴자야!"

자고 일어나니 창밖은 딴 세상인 것처럼 새하얬다. 초저녁까지만 해도 펄펄 날리던 눈이 밤새 펑펑 쏟아진 모양이었다. 친구들과 눈싸움 할 생각에 잔뜩 신이 난 두 아이와 달리 나는 한숨만 푹푹 나왔다. 아침마다 두 아이 등교를 위해 한 시간은 운전을 해야 하는 터라 눈길이 걱정스러운 탓이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눈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는 나의 푸념에 두 아이는 엄마를 동심 파괴자로 몰아갔다.

"운전하기 전까지는 엄마도 눈 좋아했었어!"

억울함도 잠시 학교 갈 준비로 바쁜 아이들을 붙잡고 오래전 기억을 펼쳐놓았다. 엄마도 첫 눈이 오는 날이면 신나서 사진도 찍고 작은 눈송이를 손에 담기 위해 애쓴 적이 있다고. 친구들과 만나 괜스레 거리를 걸으며 가끔은 밤새 수다도 떨었다고 말이다.

"그럼 엄마도 다시 그때처럼 하면 되겠다."

둘째는 엄마의 동심을 되살릴 방법을 생각해냈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 첫째도 엄마가 오늘은 특별하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제법 어른스러운 소리를 했다. 나는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지만 내심 씁쓸해졌다. 일하랴, 살림하랴, 육아하랴..하고 싶다고 뭐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하루도 빠짐없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 두 녀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서 운전하는 내내 생각했다. 그때 나와 눈길을 걷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너무 오래 전이라 나만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지....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시간을 보니 다들 아이들 등원 준비로 바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들었다 놨다 여러 번 망설였다. 결국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못했지만 추억을 음미하며 마시는 따끈한 차 한 잔에 아쉬운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