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부부였을 우리

요즘은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이 아무렇지 않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랐다. 확진자의 동선은 물론 어디사는 누구라는 정보까지 공개되어 주변을 얼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서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친정이나 시댁에 갈 수 없었다. 친정 엄마께서는 뉴스에서 서울의 확진자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나올 때마다 나에게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고, 시어머님께서도 명절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 휴게소에 갈 때도 위생장갑을 껴야 했고 음식도 먹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랬던 그때. 나는 부득이하게 부산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2박 3일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여야 하는데 숙박부터 외식까지 모든 게 다 걱정스러웠다. 혹시라도 내가 확진자가 되어 안내문자에 동선이 공개되는 상황이 생길까봐 불안했다. 그런데 부산에 간다고 생각하니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떠올랐다. 결혼 전까지 꽤 자주 만난 터라 서로의 연애사부터 집안 사정까지 다 아는 사이였다. 그 친구는 결혼 후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라도 볼까 싶어 여러 번 휴대폰을 들었지만, 코로나로 모두가 만남을 꺼리던 상황이라 자꾸만 망설여졌다. 그런데 정말 우연하게도 그 친구에게 잘 지내냐며 연락이 왔다. 몇 년 만의 통화인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오랜만에 들은 목소리였는데 친구는 결혼 전과 똑같이 활달하고 밝고 명랑했다. 여전히 말끝마다 웃음이 묻어났다.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물은 후, 나는 며칠 후에 부산에 가게 되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해 참 아쉽다고, 다음에는 꼭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그런 말을 왜 이제야 하냐며 단번에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호텔은 알아보지도 말라며 못을 박았다.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한사코 거절했지만, 계속해서 자기 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해주어 나는 결국 2박 3일 동안 친구네 집에서 지냈다. 우리 아이들은 친구가 해주는 음식에 계속해서 엄지를 들어올렸다. 호텔에서나 먹을 법한 아침식사와 디저트, 푸짐한 저녁 식사 등 그동안 내가 집에서 해주던 음식과는 차원이 달랐다. 친구의 남편과 아이들도 우리 때문에 지내기 불편했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자주 만난 사이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하나같이 다 친구의 푸근함과 넉넉함을 닮아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친구는 언제나 언니처럼 나를 챙겨주었다. 내가 잘 먹고 다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항상 먼저 물어봐줬다. 결혼해서 아이 키우느라 그런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함이 몰려왔다. 부산에 다녀온 지 일년이 지난 시점, 여름 휴가를 맞아 친정에 내려갔다가 친구와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 친구도 남편과 아이들을 친정에 두고 나온터라 우리는 1년 만에 또 새로운 이야기로 쉴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무슨 말 끝에, 친구는 '귀로 점을 보는 곳'이 있다며 가보자고 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귀만 보고 인생을 이야기한다니, 나는 너무 신기해 따라나섰다. 카페 한켠에서 우리 두 사람의 귀를 주의깊게 본 그분은 건강, 돈, 일, 자식, 남편 등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었는데, 갑자기 우리에게 어떤 사이냐고 물으시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한마디 하셨다. "전생에 부부였네요. 두 분은. 궁합이 정말 잘 맞아요." 그래서 오랜만에 통화해도 어제 만난 사이처럼 느껴지는 걸까? 정말 고맙다는 이야기를 입이 아플 정도로 나에게는 과분한 친구, 시절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쓰담쓰담 #시절인연 https://www.instagram.com/p/CmePxWxr1ARnHhvnINL1XewqijVYlJoEf56bbw0/?igshid=MDJmNzVkM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