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깎는 느낌이 좋다. 연필깎이에 넣어서 샤프하게 깎아지는 연필도 좋지만, 칼로 뭉툭하면서도 길게 다듬은 연필도 좋다. 앞뒤가 뾰족한 연필부터, 볼펜 뚜껑을 꽂아서 수명을 연장하던 몽당연필까지. 연필 한쪽을 칼로 베어내고 이름도 써놓고. 필통에 가지런히 연필들을 깎아서 넣어두었는데, 정작 연필로 글을 쓰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글씨체가 이쁘지 않고, 쓰다 보면 굵어지는 글씨가 마음에 안 들었다. 연필을 생각하면 수학 문제집이 생각난다. 한 권을 사서 계속 지워가면서 풀어야 했던 수학 문제집. 엄마가 점보 지우개로 매번 지우면 연필 자국이 난 책에 다시 풀어야 했었다. 만화책을 한참 보던 때에는 기름종이를 덧대어 그림을 베껴댔었다. 기다란 새 연필로는 연필 돌리기 연습도 많이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지금은 타자로 치는 것이 훨씬 익숙하다. 연필을 안 쓴지도 오래되었고 메모도 필사도 볼펜으로 했다. 근데 아이와 함께 하면서 다시 연필을 쓴다. 글을 끄적이기 좋아하고 그림도 연필로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같이 놀다 보니 나도 연필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좋아하는 연필은 깎지도 못하게 해서 내 연필은 어느새 짧아져버렸는데 아이와 함께 맘에 드는 연필이나 사러 가야겠다.